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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보도기사 게시판 - 07.03.25-권력이 덜 설치고 돈이 덜 까불게...(전상인 교수)


[월] 07.03.25-권력이 덜 설치고 돈이 덜 까불게...(전상인 교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13 조회수 1717

 [시론] 권력이 덜 설치고 돈이 덜 까불게…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2007.03.25 22:56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며칠 전 마산에서는 뜻 깊은 문화행사가 하나 열렸다. 1976년 이후 월례 공개강좌와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쳐온 ‘합포문화동인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그 모임은 명실공히 보통사람 다수의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나다. 여력 있는 사람은 금전으로, 시간 남는 사람은 일손으로, 언변 좋은 사람은 말과 글로써, 그리고 컴퓨터 잘하는 사람은 기술로 십시일반(十匙一飯)하는 식이다. 마산이 한때 국내 7대 도시에서 지금은 경남 7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되었지만 합포문화동인회는 지역문화 활동에 관한 한 전국적 귀감이 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도시락 저녁으로 마감한 그날 기념행사장에서 조민규 회장은 매우 소박한 목소리로,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던졌다. 지난 세월 동안 혹시 합포문화동인회라는 게 있어서 마산이라는 도시가 힘깨나 쓰는 사람이 그래도 덜 설치고 돈깨나 만지는 사람들이 그나마 덜 까부는 지역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자평(自評)이었다. 여기서 실제로 마산이 그런지 안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권력의 오만과 재물의 만행을 막을 수 있는 문화의 힘을 지적한 것만은 정확해 보인다. 언필칭 문화의 세기요, 온 천지가 문화의 시대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2004년 6월에 ‘창의(創意) 한국―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을 제시한 데 이어 이듬해 7월에는 ‘문화강국(C―Korea 2010) 전략’이 공포되었다. 지방정부 또한 너나 할 것 없이 문화사업에 부심하고 있다. 2006년 2월에 ‘비전 2015, 문화도시 서울’ 구상을 발표한 서울시의 경우, 향후 10년간 7조6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요 몇 년 사이 중소도시에서는 1000석 내외의 수백억원짜리 공연장이 크게 늘어나 현재 전국적으로 140곳이 넘는다고 한다.
문화대국과 문화강국을 향한 희망과 의지를 누가 나무랄 수 있으랴. 문제는 이처럼 엄청나게 거창한 문화정책의 씁쓸한 이면이다. 문화와 관련된 법률을 만들고 재정을 늘리고 건물을 세우는 일을 능사로 아는 상황에서 막상 문화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문화인으로 거듭날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는 문외한(門外漢)들이 문화를 언급하고 실행하는 한 그것은 한갓 행정이나 산업의 대상일 뿐이다. 일 년에 공연은 불과 며칠이고 나머지는 거의 비어 있거나 이따금 행사집회장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인 우리 주변의 수많은 문화공간이 이를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문화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내부에도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문화정책이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이행하는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문화권력의 지위를 굳히는 집단이 나타났다. 이른바 코드 인사와 예산 장악을 통한 문화의 권력화 현상이 문화의 고유 위상과 역할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문화혁명의 기세다. 문화를 사회변혁의 수단인 양 인식하는 태도가 시대정신처럼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한 이가 올 대선을 위해 ‘총대’를 메겠다고 자청하기도 했다. 문화란 결코 정책이나 산업 혹은 혁명이나 운동과 결합하여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문화의 숨은, 그러나 진짜 기능은 마산의 풀뿌리 문화모임에서 보는 것처럼 힘깨나 쓰고 돈깨나 만지는 사람들을 그나마 덜 설치고 덜 까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문화의 위력은 그것이 나름의 순수성과 자율성을 견지할 때 나오는 법이다. 문화란 스스로 세력화하거나 권력과 자본에 가까이 다가갈 때 힘이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마산 나들이는 문화의 본색이 상식이자 일상이며, 순화이자 품격이며, 화합이자 평화라는 사실을 새삼 즐겁게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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